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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관상가양반, 서두에 중요한 게 빠진 듯 허이 - 박상훈 저, 2023,『혐오하는 민주주의』(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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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관상가양반, 서두에 중요한 게 빠진 듯 허이."

박상훈, 2023,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 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후마니타스. 324쪽, 18,000원.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 정치’라는 창문으로 바라본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입체적 모습이다. 팬덤 정치란 무엇인가, 행위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등장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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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나는 저자랑 생각이 많이 다르다. 이는 저자 박상훈이 2009년에 한국의 지역주의를 주제로 쓴 『만들어진 현실』을 읽고서나, 한 두 차례 저자의 특강이나 강연을 듣고도 든 생각이니 상당히 오래된 생각이다. 이번 책을 읽고서도 박상훈과 나는 같은 대상을 두고 그것이 문제라고 보면서도, 서있는 지점이 달라서인지 대상을 서로 다르게 인식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박상훈이 신간을 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일독(一讀)을 권한 친구에게 대답한 첫마디도 예전에 박상훈을 여러 번 접해봤는데,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읽어보겠다고 답했다. 이유는, 우선 생각은 다르지만 박상훈은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내가 자기랑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를 린치하진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 확증편향이나 반향실 효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권한 친구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권했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박상훈과 나의 차이는 비유하자면 이렇다. 대상이 완전한 구체가 아닌 다음에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원기둥은 동그라미로 보이기도 하고 네모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와 나의 차이는 그 정도는 아니다. 이번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주제인 '팬덤 민주주의', 저자의 표현으로는 "혐오로 작동하는 민주주의"(20)가 좋지 않은 현상이라는 것, 즉 원기둥이라는 것은 공유한다. 이 점에서 모니터 화면 바깥의 현실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활발히 활동하는 진지한 정치학자인 (다만 논문은 거의 쓰지 않고 단행본을 많이 낸다) 저자 박상훈이 팬덤 민주주의를 파헤쳐가며 서술한 많은 내용, 특히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문제인지 진단에 깊이 공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 있고 억울해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좌절과 혐오의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함으로써 서로 대화하고 협력할 수 없는 마음 상태를 갖게 되었다"(12)는 진단이 절절히 와닿는다. 나조차도 문재인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내 생각을 전달하려고 했다. 실제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기도 했고. 그러다 어느 식당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안경환의 자녀문제와 로스쿨 제도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옆자리 작업조끼 입은 어느 건장한 취객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고 조국 사태 이후에는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은 '생각'이 아니라 '신앙'을 외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 뒤로 내 '생각'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신앙인에게 생각을 전했다가 조리돌림 당한 꼴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닫고 살던 와중에 팬덤 정치에 대해 박상훈이 술술 읽히게 낸 책을 보니, 같은 걸 두고 마음이 아파온 사람이 있구나 하며 앉은자리에서 한숨에 읽을 수 있었다. 후술 하겠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점은 저자가 나름 제시한 원인이다.

짤막한 머리말과 결론을 빼면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팬덤 정치를 문제가 있는 현상으로 주목한다. 3장과 4장은 한국의 정당 구조와 팬덤 정치의 연관을 분석한다. 3장이 말하는 바는 한국의 정당 구조는 제3당이 들어서기 어려운 공고한 양당제인데, 문제는 번갈아 여당과 야당이 되어온 두 정당을 당 외부에서 장악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이다. 이는 양당이 이념적으로 거리가 서로 멀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 두 당 모두 좌파나 우파(나는 진보와 보수라고 부르지 않겠다)적 정책을 통해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엇비슷한 정책을 내놓는다. 즉, 유럽과 남북미 등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는 포퓰리즘과는 성격이 다르다. 거기는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고, 이민자 등 특정 사안을 중심에 두고 벌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직접 민주주의'가 좋은 민주주의라는 환상, 국민의 민낯 여론이 진짜 민의라는 착각(저자가 사용한 용어는 아니다) 등이 섞여 당의 가치와 정책, 정견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이 이해하고 신봉하고 실현하고자 활동해 온 '당원'보다도 몇 개월 사이 돈 한두 푼 내고 가입하여 당원이 된 사람들 무리가 당권을 장악하기 취약한 구조로 변화해 왔다. 그 결과 당내 활동과는 무관하더라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강성 지지층이 형성된 정치인이 단번에 당권을 장악하고 곧장 대선 후보로 등장한다.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정당의 목적이지만, 당이 늘 대통령직 하나만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현상은 좋지 못하다. 충분한 시간과 절차를 거쳐 조악했던 사상과 이상이 숙고되어 다듬어진 당론과 정견이 되고, 그것이 다시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고민된 바 정책법안으로 탄생해야 하는데, 한국의 정당은 이런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4장은 뜨내기 신입 당원의 목소리가 기존 당원의 목소리를 압도하게 된 상황에서, 국회의원은의 법안 활동이 어떻게 퇴행했는지 다룬다. 벽지에 간장 뿌리고 머리를 삭발하며 괴성을 질러서 저렴한 시청자의 질 낮은 이목을 끄는 모 인터넷 방송 플랫폼 BJ처럼 국회의원도 세간의 주목을 끄는 데에만 급급하여, 그리고 발의한 법안 수를 '성과지표'로 홍보하며, 사안과 현상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손쉽게 어그로나 끌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되면 결과에 대해서는 몰?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과는 뒤엉킨 법체계의 미로에 갇힌 일선 공무원과 도대체 뭐가 맞는 건지 헷갈리는 국민이 진다.

(그런데 이는 거대 양당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2010년대 중후반에 알게 된 사람인데 정의당의 당 활동을 오래 했고 서울의 어느 지역에서 봉사활동과 지역구 관리를 열심히 해온 동년배의 사람이 있다. 정의당에 속했다는 것부터 이미 어느 지역이든 그에게는 험지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20%대 득표율로 낙선했으니 지역에 그가 들인 막대한 공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가 학자라고 여기지 않으며 차라리 '도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멋있게 말하면 돈키호테고 나쁘게 말하면 약장수나 망상증 환자다). 심상정을 그렇게 '빨아대는' 탓에 다소 거북하고, 나랑 생각이 일치하는 점이 거의 없는 사람이지만, 진정성이 있고 참 열심인 사람이라 존중한다. 그러던 그가 탈당했는데, 자기가 그렇게 칭송하던 심상정이 류호정을 영입해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꽂아주는 걸 보고 현타가 와서 탈당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의원이 된 류호정의 어그로 잘 끄는 활동을 보면 정설이 근거가 있다고 생각된다.)

3장과 4장이 팬덤 민주주의와 망가진 정당은 이제 떼어놓기 어려운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말한다면, 2장과 5장은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원인 파악 중 공감이 가는 것은 우선 팬덤 정치의 팬덤이 확신에 찬 격렬한 선의만 있고 자신의 선의가 불완전할지도 모른다는 성찰이 없다는 것과 이들이 일소, 근절해야 할 악(惡)에게 조롱, 린치, 욕설, 문자폭탄 등을 하면서 '효능감'과 '정의감'을 느낀다는 지적이다. 즉 이들은 "유머나 조롱을 '사이다 발언'으로 잘 결합하는 일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46) "용납할 수 없는 자들과의 싸움에 나선다는 소명 의식을 갖"는다(94).

대통령이 당을 장악하여 의회에서 당이 기능하지 못하는 현상이 이명박 대통령부터라는 지적엔 공감한다. 2008년 여당이 총선에서 압승하면서부터 국회 내에서 교섭단체 간 협의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대통령을 견제하려던 한국의 민주화가 어느새 "대통령[직]을 위한 민주주의"로 퇴행했다(257). 대통령만 내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국회는 "대통령 의제를 두고 필사적으로 싸운다"(262). 박근혜 대통령부터는 대통령의 파벌이 본격 당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정당의 대통령'은 사라지고 '대통령의 정당'이 남았다"(259). 이 현상으로부터 팬덤 정치로 이행은 논리적으로도 설명되며, 실제 우리는 그 논리대로 전개된 것을 경험했다. 박근혜/이명박/문재인/윤석열 대통령은 민의, 여론, 직접 민주주의 등의 명분으로 당내 반대파를 잠재우고 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아니지만 역시 당을 장악한 이재명도 동원하는 명분은 같았다.


나는 이 설명에 빠진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가 공감이 가지 않거나 저자가 놓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즉, 이런 현상이 양대 진영에 고르게 나타나는 것처럼 서술하는 대목에서 나는 저자와 생각이 갈린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해 나는 저자가 결론에서 정당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의 발전을 부르짖는 것에서 이면의 다른 욕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한다. 한국에서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고 의회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사실 (저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민주당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크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아마 저자에 대한 내 편견 탓일지도.

나는 대학 시절부터 좌파가 멋있다, 소위 쿨 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고 또 그런 인상을 공연히 드러내는 사람은 봤지만, 반대로 우파가 그래 보인다는 인상을 받거나 그런 인상을 가진 것을 공연히 드러내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은 모두 일베에 있거나 일베로 몰리기 때문에 공연하지 못하다. 우파는 틀딱이거나 까스통, 구닥다리에 후져보인다. 좌파는 세련되고 쿨 해 보인다. 이들은 차이가 아니라 가치판단이 개입된 용어를 사용한다.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정치적 '올바름', '부자' 감세, 재벌, 서민, 신자유주의, 파쇼, ~~독재, ~~민주화, 그냥 곤경에 처한 것이 아니라 '핍박'과 '박해'를 받는 소수자 등. '애국 보수'라고 하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이스라엘기와 일장기도 들고서 확성기에 빽빽거리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유는 다르지만 저런 사람들과 같은 곳에 투표한다는 점이 부끄러워서 '샤이 보수'라는 말도 있다. 좌파의 언어는 수고가 드는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정의감이 들게 하며 그렇기 때문에 효능감이 아주 크다.

좌파의 언어로 무장하는 것은 효능감, 즉 가성비가 아주 좋다. 그런데 우리의 텅 빈 정의감 항아리는, 상대적으로는 남보다 더 정의로워야 만족할 수 있고, 절대적으로는 아주 크고 깊어서 채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양자가 함께 작용한 결과, 현재의 만족감을 유지하려면 더 큰 자극을 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뿐이 아니라 행동(중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행동)으로 나서게 된다. 저자가 지적한 팬덤 행태의 싹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좌파 팬덤의 경우에나 그렇다. 애국보수라는 말에서 뽕이 차오르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러기에 저자가 양쪽에 모두 팬덤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일면 타당하다. 그런데 과연 까스통 태극기가 현재 국민의 힘과 그 전신을 장악했는가? 아니다. 우파 팬덤은 거대 양당 중 우파당을 장악하지 못했다. 윤석열이 당을 장악한 것과 우파 팬덤이 당을 장악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윤석열이 장악한 것은 평당원과 국민이 아니다. (그랬다면 지지율이 이렇지 않았겠지.) 우파 팬덤은 우리공화당 등 다른 대안정당을 만들고 떨어져 나갔고, 이들은 현재 국민의 힘과도 투쟁한다.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우파 팬덤이 사용하는 용어가 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당권을 장악하기에 충분한 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파의 용어가 쿨하지 못하고 뒤떨어져 보이고 우파의 인사들이 틀딱 같고 꼰대같이 보이는 것은, 꼭 좌파 팬덤이 조롱하고 희화화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좌파 팬덤이 아니더라도 소위 틀내난다. 좌파 팬덤은 그러한 주어진 사실을 잘 활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활용한 것이 효과적이어서, 건전한 좌파 시민이나 주요 정치 인사들은 수년간 다소 지나친 언행에 대해서도 동조 혹은 묵인해 왔다. 가성비 좋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팬덤이 바로 자신에게 죽창을 꽂고 자기가 사랑하는 당에 불을 지르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진작부터 꿰뚫어 봤는데 저자는 아둔해서 못 봤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보다 총명하고 통찰이 있고 연구도 많이한 식견있고 훌륭한 (저자 포함) 분들이 몰랐을리가 없다. 다만 상대 정파를 제압하는 팬덤의 효과가 눈 앞에 보이니까 이를 누리거나 적어도 묵인해왔을 뿐이다. 팬덤이 흑화하여 팬덤 정치, 팬덤 민주주의, "혐오로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될 징후가 보였지만 말이다.

"헌데, 관상가 양반! 생각해보니 영 이상하구만! 이미 나는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될 상이라니... 이거 순 엉터리 아닌가? 왕이 되기 전에 말을 했어야 용한 것이지, 이제 와서 하는 소리야 누군들 못 하겠는가?"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 관상가에게 한 말이다. 나는 여기에 살짝 변주를 주어 독후감을 마치고자 한다.

"이보게 관상가양반, 서두에 중요한 게 빠진 듯 허이."

박상훈은 서두에 무슨 말이라도 고백하는 내용을 담았어야 했다. 지난 10여 년 생각이 바뀐 것인지, 팬덤의 징후를 목격했는데 정파적으로 유리한 효과를 보고 놔둔 것인지,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하게 되기까지 도대체 지난 10여 년 사이 자신의 머리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이야기 하나 없이 나타나서는 뒤늦은 진단에 '첫째는 성심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류의 조선시대 시골 유생 상소문같은 처방을 한다면 (농담이 아니다. 저자의 처방에는 결국 정치 지도자와 유권자 각 개인의 도덕적 수양으로 환원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우리 모두의 잘못이니 같이 책임지자고 하는 꼴로 보인다. 개인적인 반성이 담기지 않은 이 책은 '이제 와서 하는 소리야 누군들 못하겠는가?' 정도. 

마치며, 그런 점에서 박상훈의 스승인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지난 6월의 모처에서 최장집은 운동권이 낡은 세계관에 갇혀있다고 비판하며, '이승만이 분단을 가져왔다고 하는 것은 이승만이 악이라고 정의한 뒤 나머지를 끼워맞추어 이승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며, 이승만 박정희의 구체제가 나쁜 것만은 아니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상황마저 다 이승만과 박정희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승만의 평화적 하야가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취지의 강연을 했다. 10년 전 최장집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내용의 강연인데, 상당히 충격이었다.

321쪽 중간 오타: Havard Univershty Press. -->Ha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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