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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가에서 불자로 살아남기 불교 군주편 태조 이성계 - 너 이색보다 유교 잘함?

이렇게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국사

by 內幕 2022. 12. 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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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보통 철저한 유교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조선의 후반부 250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조선 전반부 250년의 군주, 지배층, 피지배층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불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말 불교의 폐단을 목격한 일부 지식인들이 신유학을 배워 유교적 가치체계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가 조선을 세웠지만, 개인적으로나 문화 관습적으로는 여전히 불교가 우세했다. 왕실과 사대부 모두 불교적 관습에 따라 살았고 또 그것이 유교국가에서 대단한 흠도 아니었다. 군주와 관료가 불교를 믿는다고 땍땍대던건 '프로불편러'인 소수 유학자들 뿐이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건국되었지만 정치인이나 지식인이나 보통 사람들이나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체계에 따라 삶을 살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대한민국 건국 후 7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개인적 삶은 꼰대 그 자체인 사람들이 많지만, 적어도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가 공적인 삶의 표준 가치임은 분명하다. 조선 초기에는 유교가 공적 영역의 표준 가치도 아니었다.

 

인간병기 태조 이성계 어진. 조상 대에 몽골에게 귀순했던 이성계 가문은 이성계와 아버지 이자춘이 고려에 귀순한 뒤 이성계의 화려한 무공을 바탕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한다. 고향의 아내를 남겨두고 올라와서 서울(개경)에 젊은 와이프 하나 더 얻은 건 덤이다.

 

하여튼 이번 글에서는 조선 초 군주들의 애틋하고 눈물겨운 불심을 소개하고자 한다. 창업군주 살인병기 태조 이성계부터가 신실한 불자였다. 조선 초 여러 야사에 무학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무학대사는 태조 이성계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봐도 된다.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불탄 집에서 나오는 꿈 해몽, 십리를 더 가면 도읍터가 나오리라는 왕십리 이야기 등, 이성계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들에 무학은 비중있게 등장한다. 그리고 실록에 따르면 그는 조선에서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유이한 승려다. (나무위키에는 무학대사가 유일한 국사라고 하나 이는 오류다. 천태종 승려 조구가 태조 3년 국사가 되었다는 기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학이 국사가 되었다는 기사는 없는데 나중에 고종이 무학을 일컬으며 '무학국사'라고 부르는 것에서 무학 역시 국사였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하륜을 분한 이광기. "소생 하륜이옵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인생은 하륜처럼. 이 글과 딱히 상관 없지만 그냥 넣어봤다. 그것이 하륜같은 삶이니까.

 

유교 관료들이 불교를 비판하고 불심을 비판할때마다 이성계의 파훼법은 이색을 걸고넘어지는 것이었다. 목은 이색으로 할 것 같으면 고려 말 세 명의 현자인 三隱(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중 하나로 당시 유학자 중 으뜸(儒宗)이라고 불렸다. 여말삼은의 나머지 두 명인 포은 정몽주와 야은 길재도 이색의 제자니 말 다했지 뭐. 정몽주뿐 아니라 여말선초를 장식하는 굵직한 인물 대부분이 그의 제자다. 정도전, 이숭인, 권근, 하륜, 윤소종 등.. 드라마 정도전에 나온 문관 태반이 그의 제자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이색이 불교를 믿었다고 하니 불교 좀 믿는 거 가지고 유학자들이 태클을 걸면 이보다 좋은 파훼법이 어디 있으랴. 물론 이색이 진짜 불교를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남들보다 조금 더 불교 후렌들리(friendly)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잠깐 딴길로 새보면, 나는 군생활 시절 지역 보훈행사를 많이 했다. 보훈행사라고 하면 군의 높으신 양반들도 오고 (사단장은 흔하다. 군단장도 종종 오고 사령관도 한 번 봤다) 지역의 참전용사도 모신다. 행사에선 유해발굴사업을 소개하고 출토유품을 설명하는데 사건은 출토유품 설명에서 터졌다. 유품으로 칼빈소총 대검과 M1소총 대검을 전시했는데 한 참전용사분이 두 대검의 이름표가 바뀌어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이 행사에는 훗날 육군인사사령관과 병무청장을 지내는 1군단장 모**중장과 훗날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간지남 당시 9사단장 김**소장도 참석했는데 이런 실수가 터지니 행사를 준비한 우리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대형사고였다. 참전용사의 지적에 1군단장이 "음.. 맞게 달린 것 같은데요?"라고 공손하게 대꾸했다. 허겁지겁 지침서를 뒤적이며 정말 유품 이름표에 착오가 있던 것인지 확인하던 우리에겐 한미상호방위조약보다 더 든든한 한마디였다. 그러나 이렇게 든든한 군단장님마저 데꿀멍 시켜버린 참전용사의 핵폭탄 발언이 찰나를 기다리지 않고 귀에 꽂혔다.

 

"전쟁도 안해본 사람이 뭘 안다고 나서?"

 

그렇다. 군단장은 별 셋을 달기까지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기는 전장에 가본 적이 없는 것이다.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숱한 훈장은 (깨어나세요) 용사님이 손수 칼빈과 M1 대검으로 적군을 죽이고 오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지침서를 넘겨 확인해보니 참전용사분이 착각하셔서 이름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신 것이었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군단장도 사단장도 연대장도 우리 과장(중령)도 팀장(상사)도 아무도 반박을 못하고 있는데 일병 나부랭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여튼 요즘 말로는 가짜뉴스라고도 할 수 있는 이색불자설(李穡佛子說)의 진원지는 유튜버 태조 이성계였다. 그는 아주 직설적으로 이색을 걸고넘어진다. 아 그래서 너 이색보다 유교 잘하냐고.

 

"유교의 으뜸 목은 이색도 불교를 믿었는데 (李穡爲儒宗信佛), 너 이색보다 잘남? 아님 닥치셈 (然則穡反不及於乎? 其勿復言)."

"이색은 세상의 큰 선비이지만 부처를 숭상하는데, 저새끼들은 무슨 책 읽어서 저렇게 됨?( 李穡爲世大儒, 亦且崇佛。 此輩讀何書, 不喜佛若是?)"

 

자신의 스승이거나 자기 스승의 스승인 이색을 걸고 넘어지는 이성계에게 조정의 유학자들도 별 수가 없었음은 마찬가지였다. 몇 마디 더 토를 달았다간 미타찰에 먼저 간 최영이나 우왕 창왕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 유교를 국시(國是)로 걸고 세운 나라 조선의 첫해 겨울이었다.

 

*참고자료

태조실록 1년 12월 6일

태조실록 1년 윤12월 4일

고종실록 2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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