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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깊어 그침이 없네 源遠不竭

이렇게 지어 보았다 如是我習作

by 內幕 2024. 7. 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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源遠不竭 샘 깊어 그침이 없네

有素而繪倩盼兮 흰 바탕에 보조개와 눈동자를 그렸네
掌竹節笑瓦當仁 대나무 마디진 손바닥 막새의 어진 웃음
靑丘槿花鄕月城 푸른 언덕 무궁화 꽃핀 고을 경주에서
源遠之水 샘 깊은 물 넘실넘실 옥돌에 닿았구나

甲辰孟夏 祝汎熙結婚之慶 堂兄碩熙撰 叔父錦農書


올해는 시흥이 자주 올라 방자하게 여러 수를 짓고 있다. 지금껏 네 수를 지었는데 모두 아침에 씻는 찰나에 얼개를 갖추어 순식간에 지었다. 이번에는 사촌동생(汎)의 결혼식을 열흘 가량 앞두고 아침에 씻는데 갑자기 흥이 올랐다. 짝이 되는 신랑(珉)은 대한민국 공군장교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다. 올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둘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기에 조문을 와서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듬직하고 다부진 체격이지만 얼굴은 웃는 상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그녀가 보더니 신랑이 사촌동생을 보는 눈빛이 꼭 내가 자기를 보는 눈빛하고 같아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고등학교 친구로 만난 둘은 일곱 해 넘게 사랑을 이어오다 결혼에 이르렀다. 사랑의 샘이 깊으니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몇 달 일이 너무 바쁘고 짜증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사람은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걸 보고 살아야 한다는걸 다시 느꼈다. ‘주변이 아름다우니 서행하시오’ 이 말을 잊고 지내다가 둘의 결혼을 보며 다시 떠올렸다.

동생이 신랑을 보는 눈빛도 못지 않다

첫 구는 내 동생을 그렸다. 시경 위풍衛風 석인碩人은 이렇게 시작한다.

碩人其頎 衣錦褧衣 齊侯之子 衛侯之妻 (중략)

훌륭하신 그분께서 훤칠하시다. 무늬진 옷 위에 홑옷을 덧입으셨네. 제나라 임금의 여식이고 위나라 임금의 아내 되시도다.

(마침, 내 이름이기도 한 석인碩人은 여자였던 것이다..!) 

手如柔荑 막 돋은 띠풀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손

膚如凝脂 엉긴 기름처럼 뽀얀 살갗

領如蝤蠐 목덜미는 나무벌레같이 길고 하얀데

齒如瓠犀 치아는 희고 가지런하다

螓首蛾眉 쓰르라미 닮아 넓고 반듯한 이마에 누에처럼 복실한 눈썹이 길구나

이어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巧笑倩兮 美目盼兮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지고 눈동자는 또렷하도다"

이어지는 묘사를 보더라도 석인께서는 대단한 미인이셨던 것이 분명하다. 공자의 제자 자하도 이 묘사를 썩 인상 깊게 읽었는지 공자에게 질문을 한다. (논어에서는 巧笑倩兮 美目盼兮 뒤에 "素以爲絢兮 흰 바탕 위에 무늬" 다섯 글자가 더 있으나 전해지는 시경에는 이 구절이 없다) 공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흰 바탕이 있은 뒤의 일이다"라고 답한다. 무언갈 깨달은 자하는 "예의가 뒤라는 말씀이시군요!"라고 소리치니 공자가 크게 칭찬한다. 흰 종이가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듯, 예禮는 마음을 다하고(忠) 미더운(信) 바탕이 있은 뒤의 문제라는 뜻이다.

범汎의 결혼식을 생각하는데 문득 이 구절이 떠올랐다. 범汎은 석인의 묘사에 손색이 없기 때문일까.

둘째 구는 신랑이다. 말했듯 공군 장교인 민珉은 다부지다. 문상 왔을 때 악수하며 손을 잡아봤는데 손가락 마디가 대나무처럼 곧고 단단했다. 꼬리가 긴 눈은 신라의 미소랑 닮았다.

셋째 구의 청구, 근화향은 모두 우리나라를 부르는 이름이다. 마침 우리와 신랑 모두 본관이 경주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않네. 꽃이 좋고 열매가 많구나.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네(源遠之水 旱亦不竭). 냇물 이루어 바다에 이르는구나. 이 말은 용비어천가의 둘째 장에 나온다. 샘이 깊어 그치지 않는 사랑! 서로가 힘들 때 곁에만 있어도 목을 축이듯 기운이 나고, 기쁠 때 보고만 있어도 웃음을 짓는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을 '넘실넘실 옥돌에 닿았구나'라고 해도 되고 '범이 민과 이어졌네'라고 해도 되게끔 둘의 이름을 넣어 말장난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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