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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잡는 일, 소 잡는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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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최상위권 학생의 의대 진학 편향은 입시철마다, 해외에서 과학기술 인재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수전노 기득권'인 의사가 욕을 먹을 때마다 회자되는 묵은 떡밥이다. 최상위권 학생의 의대 편향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전문직 의사에 대한 사회의 선망, 의사의 경제적 풍족함부터, 한국의 의료복지체계뿐 아니라, 최상위권 학생이 과학기술계로 진학했을 시 기대소득 등.. 너무나 복잡한 사안이라 장삼이사가 다 나름의 의견이 있고 한 마디씩 거든다.

 

그중 오늘 하고 싶은 말과 관련하여 눈길이 가는 말은 바로 '그렇게 좋은 머리를 가지고 왜 의사가 되느냐. 과학자, 기술자가 되면 수억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는데. 재능이 아깝고 낭비된다.'는 따위의 맥락이다. 의사과학자 육성에 매진하는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도 비슷한 맥락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의사는 평생 10만 명을 진료하고 의사과학자는 수억 명을 치료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헤럴드경제 21년 12월 3일 자). 의사보다 (의사)과학자, 기술자가 인류에 더 큰 공헌을 할 가능성과 잠재력이 많은 지 여부는 치워두자. 나는 이런 인식의 핵심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는 경구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가진 재능과 하는 일의 수준이 엇나감'으로 정리하고 나서, 내 삶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여러 南蠻鴃舌之人 지겨운 말들을 듣자니, 최규석 작가가 그린 웹툰 송곳의 어느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이수인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위로 전역하여 모 대형마트에 관리자로 취직한다. 자신이 군문을 떠나게 한 성질의 사건을 회사에서도 겪은 뒤 그는 노조활동에 힘쓴다. 노조는 빨갱이나 하는 짓이라고 고까운 시선을 보내는 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늘 자신의 군대 시절을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자신이 모시던 대대장이 지금 어느 자리까지 갔고 등. 그 인물은 주인공 이수인이 육사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수인을 다시 보며 고깝던 태도를 누그러트린다. 다른 주인공인 노무사 구고신은 이 일을 두고 '그가 가까이 본 사람 중 가장 높고 대단한 사람이 대대장'이라며 그런 대대장과 같이 육사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이수인은 그에게 대단한 인물이 된다고 건조하게 말한다. 우물 안 식견으로 보기엔 육사 출신으로 군인인 것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이수인

 

나는 소 잡는 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엔 이견이 많을 수 있다. '너 절대 그정도 급 아니야. 거만 떨며 착각하지 마.'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삶을 살기로 마음 먹은 뒤, 그때 세운 계획을 지금까지 차곡차곡 실행해 나가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현재로선 당초 계획보다 훨씬 순조롭고 빠르게 실현에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도 잘 진행되면 좋으련. 어쨌든 원래의 우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살았다면 결코 누리지 못할 행복을 얻고 누리며 살고 있다. 나 스스로는 내가 좀 멋있는 것 같고, 나의 사랑하는 그녀도 나를 그렇게 봐준다. 친구 몇몇도 그렇게 봐주긴 하는 것 같다. (난 중증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jyp 디아블로 2 시크리트 카우레벨에서 활약중인 바바리안이다.

그런데 내게 내가 원래 가던 길로 돌아가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그 삶을 추구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중에는 처음에는 강하게 이야기하다가 나의 전향 이후 행적을 보고 내 인생계획을 듣고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그 길이 내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확신하는 건, 그 길은 닭 잡는 길이다. 그 길에서의 업적은 (적어도 내 전공과 내게 권하는 사람의 전공 영역에선) 필부(匹夫)를 만족시키는 업적이다. 마치 작은 용기와 작은 성냄이 필부의 용기와 성냄이고, 큰 용기와 큰 성냄이 무왕의 용기와 성냄인 것과 같다. 무왕이 성내자 천하 백성이 평안해졌다. 닭 잡는 일은 아무리 잘 해도 그 업적은 직접적으론 자기 자신만 만족시키고, 간접적으로 가족 정도는 먹여살릴 것이다. 그들이 닭 잡는 길을 권하는 것은 좁은 식견으로 보기에 그 길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하고 좋은 일로 보이기 때문이지 별게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의와 애정은 이해한다. 그 일이 닭 잡는 일이건 소 잡는 일이건, 적어도 그들 시선에서 나는 그 길을 걸어낼 수 있다는 것이기에, 후한 평가도 감사하다.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좁은 식견과 지나친 끈기다.

닭 잡는 일과 소 잡는 일을 단선적으로 서열짓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나는 단지 내가 닭 잡는 일이라고 부르는 것에 별다른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 일이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살며 생계를 꾸리고 싶지도 않다. 그런 일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신나서 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불현듯 동물원에서 원숭이 무리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입장과 남만격설지인의 입장을 한 걸음 뒤에서 메타적으로 보자면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길이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 그 길로 가시면 된다. 나는 내 빼어난 재능을 그런 데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을 그런 데 소진하고 싶지도 않다. 내 재능과 시간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다. 함께이기에 서로 더 행복한 우리의 재능과 시간이다. 한 사람이 닭도 잡고 소도 잡을 순 없다. 그건 욕심이다. 닭을 잡기 위해서는 소 잡는 일을 내려두어야 한다. 홍콩에 계속 있었다면 나의 사랑하는 그녀와의 삶도, 많은 이에게 기쁨을 주는 봄동이도 없었다. 한국에 와서 다른 기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려 했더라도 봄동이는 있기 어렵다. 계백정(鷄白丁)이 되자고 우도(牛刀)를 버릴쏘냐.

여담으로 닭 잡는 일에 소 잡는 칼을 쓴다는 말은 본래 논어 양화편 4장에 나온다. 공자가 실언을 하더니 멋쩍게 '농담이었다'고 하는 대목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나관중이 이를 동탁의 수하 화웅의 대사로 붙여주어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결론: 소 잡는 칼한테 닭 잡으라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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