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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안수정등 비틀어 보기 - 꿀은 위에서부터 빨고 똥물은 아래로부터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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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안수정등'이라는 그림이 있다. 岸樹井藤 기슭의 나무, 구덩이와 등나무란 뜻으로, 위태로운 우리네 삶과 그 안에서 찰나의 쾌락을 쫓는 모습을 빗댄 부처의 말씀이다. 그림마다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지만 전달하려는 이야기는 이렇다.

한 사내가 어슬렁 벌판을 걷다가 성난 코끼리가 달려오는 걸 봤다. 사내는 놀라서 달아났다. 그렇게 벼랑까지 몰렸는데 기슭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그리로 올랐다. 나무 밑은 구덩이고 나무에는 등나무 줄기가 얽혀 있었다. 사내는 넝쿨을 잡고 매달려 코끼리를 피했다. 안도하며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아래를 보니 구렁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고 위를 보니 쥐가 넝쿨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올라가려 해도 코끼리가 노려보고, 내려가자니 구렁이가 있어 이도 저도 못하는데 야속한 쥐가 시간을 재촉한다. 소설 《The Martian》 첫 문장을 빌자면 "I'm pretty much fucked. That's my considered opinion. Fucked."라고나 할까. 그런데 별안간 매달린 나뭇가지에 걸린 벌집에서 꿀방울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사내는 처한 곤경을 까마득히 잊고 꿀방울을 받아먹는 데 정신이 팔린다.

어리석게도 위태로운 주변은 잊고 눈앞의 쾌락을 쫓으며 사는 우리네 삶이 부처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

나는 이 그림이 군생활에서 많이 떠올랐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적용되는 진리로 말이다.

꿀은 위에서부터 빨고
똥물은 아래서부터 찬다.

좋은 일은 상급자나 선임, 힘 있는 사람들부터 혜택을 보고, 안좋은 일은 하급자나 후임, 힘없는 약자가 먼저 피해를 본다. 이는 어떤 목적으로 꿀을 뿌리는지, 똥을 뿌리는지 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하급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도 득은 상급자가 더 많이 본다. '하급자에게도 혜택이 가긴 간다' 정도면 준수하다. 상급자를 제약하는 규제나 통제의 피해도 하급자가 더 많이 받는다. '강자도 제약을 받기는 한다' 정도에서 의미를 찾으면 나쁜 놈이다. 부작용으로 약자가 갈려나가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책으로 가면 더욱 또렷하다. 약자를 위한다는 선의와 명분으로 행한 많은 정책의 혜택은 결국 지식과 정보가 있고 명민한 부자, 기득권이 더 누린다. 부자, 기득권을 규제해서 약자를 돕겠다는 제도와 정책도 피해는 약자가 더 받는다. 부자와 기득권은 가진 지식과 정보, 재빠른 판단력으로 제도의 허점을 찾아서 자기가 받은 피해를 타인에게 전가할 줄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주인에게 보유세를 부과하면 약자는 집주인이 보유세만큼 떠넘긴 월세를 더 내게 된다. 부자에게 꿀을 준다고 빈자가 꼭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자 종아리를 회초리치면 빈자 볼기짝도 반드시 곤장을 맞는다.

부자는 이기적이고 약자는 이타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과 욕구가 있고,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다. 부자가 자신의 이익을 더 잘 계산하고 본능과 욕구를 더 잘 실현할 능력이 있는 것일 뿐이다. 어설픈 선의와 명분으로 꿀과 똥을 뿌려봐야 꿀 빠는 사람 똥물에 빠지는 사람을 의도대로 정할 수는 없다. 어설픈 대의를 가진 사람보다 부자가 더 똑똑하고, 약자는 기대보다 아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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