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묵상 -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나의, 나만의, 정당한' 몫은 무엇인가?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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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말이 영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각자의 몫을 받았다. 그렇기에 포도밭주인은 자기가 일찍 온 일꾼에게 불의를 행한 것이 아니라고 답한다. 아침에 온 일꾼은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약속하고 일을 시작했으며 일을 마치고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이 약속은 포도밭주인과 개별 일꾼이 맺은 것으로 다른 일꾼과 포도밭주인이 맺은 약속과는 별개다. 주기로 한 것을 주고받기로 한 것을 받았는데 왜 불만을 갖느냐. 각자가 각자의 몫을 받았다. 불의를 당한 사람도, 손해를 본 사람도 없다. 그래도 무언가 불편한 심기가 올라온다. 왜 그럴까?
해가 다 질 무렵에 늦게 온 일꾼도 해 뜰 녘부터 일찍 온 일꾼과 같은 품삯을 받았다. 여기서 불편한 마음은 뿌리가 두 갈래인 뒤섞인 줄기에서 피어난다. 한 뿌리에선 이 몫이 '나만의 몫'이라고 말하고 다른 뿌리는 이 몫이 '정당한 몫'이라고 말한다. 합치면 새벽녘 포도밭에 온 일꾼은 한 데나리온이 그냥 나의 몫이 아니라 '나만의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한다. 한 데나리온은 늦게 온 일꾼의 몫이 아니다. 그건 정당하지 않다. 정당한 몫이란 노력이나 공적에 비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찍 온 일꾼은 더 많은 몫을 당당히 요구(claim)했다.
요새 우리는 남과의 비교에 몰두하기에 이 관점이 더욱 와닿는다. 인터넷에서 접하는 모르는 사람들, 인스타에서 접하는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 아니면 사무실 파티션 너머의 직장 동료, 건너 들은 친구 이야기. 나는 이렇게 공부도 열심히 했고 좋은 대학 나와서 학점도 좋고 힘들게 일하면서 이만큼 받는데, 누구는 운이 좋아서, 농땡이 부리면서, 꿀 빨면서 맨날 놀면서 나만큼 벌거나 아니면 더 잘 버는 것 같다. 언론은 요즘 우리 세대가 '공정'에 특히 예민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관점을 따르면 나만 손해다. 꿀 빠는 사람이 내 몫을 침범해서, 내 몫을 빼앗으면서 꿀을 빨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내 속에 질투를 키우면 나만 괴롭다. (내 몫이 침범된 것이라면 응당 저항하고 되찾아야 할 것이다) 주인의 말대로 주인은 자기 가진 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자유롭게 나누어 주었을 뿐이다. 한 데나리온으로 내가 무얼 하든 내 맘이듯 주인도 합당하게 그럴 수 있다. 주인의 나머지 재산이나 늦게 온 사람의 한 데나리온 품삯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면 이 질투를 해소할 길은 없다. 남이 받은 걸 담아두어 봐야 내 속만 쓰리다. 나아가 어찌할 수 없는 걸 되뇌어봐야 남는 건 고통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언뜻 경제학에서 비교우위론에 입각하면 교역당사국 모두가 이익을 본 상황처럼도 보인다. 이익을 더 본 사람도 있고 덜 본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이익을 보긴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질투하면 나만 손해인 것을 알지만 쉽게 그런 마음을 놓지 못하는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한 데나리온이 나의 정당한 몫이라면 늦게 온 사람의 정당한 몫은 한 데나리온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 노력했고 더 많은 일을 했기에 내 노력과 공적에 합당한 몫은 저 사람의 몫보다 크다.
나는 이 관점이 버려야 할 교만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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