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다니면서 세미나를 듣거나 논문, 연구서를 읽으면 과장 조금 보태서 밥 먹었니? 만큼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바로 기여한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말에서 뿐이 아니다. 영어 서적에서도 this research contributes to, this study will contribute to 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한다. 세미나에서도 마찬가지다. 앉아서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무언가에 대단한 기여와 공헌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 양 착각이 든다. 그런데 어디에, 누구에, 무슨, 어떤 기여를 어떻게 하고 있다는 말일까? 이렇게 "임금님 벌거벗은 거 아냐?"라는 되바라진 의문을 가진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닌가 보다. 구글에 this research contributes to 혹은 research contributions라고 치면 연관검색어에 "what does research contribute to?"와 "what are research contributions?"가 나오기 때문이다.
임금님이 실은 벌거벗은게 아닌지 하는 의문을 한동안 외면하다 보면 어느새 임금님 옷이 금실 은실로 짜서 몹시 아름답다는 말이 입에 붙는다. 그럴수록 묘사는 공허해진다. 실체가 없으니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People also ask를 눌러보면 연구의 기여와 공헌이란 것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연구는 물론 많다. 이전 글에서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를 얘기했는데 (https://theinsideout.tistory.com/4 참조) 인문학의 기여도 비슷한 방식으로 물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인문학은 이렇게 물었을 때 답하기 어렵다. 이 연구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할 말이 많지만 일단은 나중에.) 물론 늘 구체적인 기여가 뭔지 따지고 얘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인생 존나 피곤한 일상이 철학인 새끼겠지. 그래도 가끔은 가슴에 손을 얹고 이 말귀를 써야 하지 않을까?
"네가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뭔지 생각해 봐"라는 지나가는 말을 너무 진지하게 고민했나 보다. 며칠간 기여가 뭘까 고민했는데 정리는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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