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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나의, 나만의, 정당한' 몫은 무엇인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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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나의, 나만의, 정당한' 몫은 무엇인가? 02

(이전글) 성경묵상 -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나의, 나만의, 정당한' 몫은 무엇인가? 01 마태오의 복음서 20장 1절-16절에는 착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가 나온다(마태오 20,1-16). 복음서의 말씀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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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무려 다섯 달 반이 지났다) 나는 "나는 더 노력했고 더 많은 일을 했기에 내 노력과 공적에 - 즉, 내 공로에- 합당한 몫은 저 사람의 몫보다 크다"는 관점이 교만하고 잘못된 관점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아주 간단하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와 존중받는 다른 어느 교회도 구원이 우리의 공로로 주어진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이 구원받는 것이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른 제대로 된 교회에 가서 상담을 받길 권한다. (달리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빨리 탈출해야 한다.)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에도 이렇게 나온다.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1-9절) (물론 구원을 언급하는 성경의 다른 말씀도 많다.)
가톨릭교리서에도 이렇게 나온다. "일반적으로 '공로'(meritium)라는 말은 공동체나 사회가 그 구성원의 행실에 대해 마땅히 주는 보상을 가리킨다. 그것이 선행일 때는 상이 주어지고 (...) 공로는 정의의 덕과 관계되며 정의의 원리인 공평에 상응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톨릭교리서 2006-7항)
이 관점에서 마태오의 복음서 20장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읽으면, 포도밭주인이 주기로 한 품삯은 내 공로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이 관점을 복음서의 비유에 철저하게 적용하여 내가 포도밭에서 한 일이 포도밭주인에게 내세울 공로일 수가 전혀 없다고까지 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주인이 주는 한 데나리온은 나의 덕 없이 주인의 선의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 데나리온은 선의로 받았기에 나의 몫이기도 한 것일 순 있어도 나만의 몫일 순 없다. 그리고 내 공로의 덕으로 받는 것이기 아니기에 내가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몫'은 아니다. 내 노력에 대가로 구원을 보답하기로 한 계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이 비유와 관련된 신학자들의 글을 보면, 일꾼은 마땅히 하고 있는 일도 없이 그저 장터에서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업자'였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침 일찍 부름을 받아 일꾼으로써의 쓸모를 다한 것이 오히려 더 큰 선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난 이렇게 강한 해석은 꺼려진다.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낮추는 해석이 건강한 신앙생활에 오히려 독이 될 것 같다. 우리 스스로를 무가치한 잉여였던 것으로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한 무가치한 쓰레기를 구원하는 하느님의 행위는 무어란 말인가? 이는 종말을 기다린 지 천 년이나 되던 중세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귀한 존재라는 것은 성경의 이곳저곳에서 여러 번 강조된다. 소중한 양 떼가 엇나가서 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토록 귀한 우리가 아니라 다른 피조물을 (예를 들면 소나 강아지, 돼지를) 구원하러 주님이 오신다는 말은 못 들었다.
이렇게 간단한 입장인데 글을 쓰기까지 다섯 달이나 걸린 까닭은,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일찍 온 일꾼들의 노력에 대해서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은 정말 무가치하고 공로로 내세울 수 없는 것이어야 할까? 하느님 앞에 공로를 내세울 순 없지만 남 앞에서는 내세울 수 있는 공로가 아닐까?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즉, 비례하는) 보상이 뒤따라야 합당하지 않을까? 글을 열게 된 마태오복음서의 이번 말씀과 정의와 공정 담론이 머릿속에서 잘 분리가 되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변명을 해본다.
우리 세대는 특히 공정에 예민하고 노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다고 한다. 이를 비꼬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뛰어버린 부동산에 나하나 벌어먹기도 힘들어 자식은커녕 결혼도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도생의 노력뿐이란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나는 노력이 합당하게 보상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보상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맞은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에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정의와 공정 담론과 조금 다르지 않나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 점을 정리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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