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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과 윤석열의 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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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품고 한을 품은 팔도의 자제들아 서슬 퍼런 칼날 내보이라! 

 

내가 오래도록 애정하는 웹툰 중에 네이버에서 고일권 작가가 연재하는 '칼부림'이라는 작품이 있다. 사극 웹툰으로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부터 시작하여 호란까지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림체며 연출과 스토리, 등장인물의 말씨까지 어느 한 구석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는 작품이다.

1부의 한 장면일텐데 몇화였는지 까먹었다. 좋아하는 장면이라 저장해두고 짤로 자주 써먹는다. 홉스가 말한대로 아무리 강한 사람도 약한 두 사람을 감당하기 어렵다. 세상은 보통 사람으로 굴러간다.

이괄은 인조반정에 처음부터 합류했던 것은 아니지만 공을 인정받아 2등공신이 된다. 논공행상에 불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2등 공신은 결코 낮은 상이 아니며 반정을 계획한 주역이 아니었던 이괄이 이러한 상에 불만을 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괄은 반정이 일어난 해에 불안한 북방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아 파견된다. 인조나 조정과의 신임도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만일 인조나 조정이 이괄을 의심했다면 없는 살림에 겨우 마련한 정예군을 이괄의 손에 맡겨 북방으로 보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조는 이괄이 요청하자 없는 곳간을 더 털어서 추가적인 병사를 북으로 올려 보낸다. 이괄도 임지에 가며 충성과 각오를 밝힌다. 당시 조선의 상황을 생각하면 인조와 이괄은 조촐하게 새 출발을 내딛는 신혼부부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듬해 1월에 이괄이 반란을 모의하고 있다는 고변이 나왔다. 인조의 반응은 이괄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고, 조정은 당장 이괄을 소환해서 국문하자는 의견과 이괄이 반란을 꾀했을 리가 없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모두에게 불행하게도 인조는 애매한 판단을 내린다. 이괄의 아들만 우선 잡아서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괄의 아들 이전은 이괄의 군중에 있었는데, 이괄은 아들을 압송하러 온 금부도사를 죽인다.

웹툰 칼부림 2부 2화의 장면

그리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 뒤의 일은 잘 알려진대로 기습전격전을 통해 한양을 점령했다가 전황이 불리해지자 부하에게 목숨을 잃고 반란은 진압된다. 역적으로 죽은 것이다.

삭풍이 살을 에는 겨울의 영변에서 주린 배를 움키며 병사를 조련하는 장수에게 역모의 누명이 씌워지고 우선 아들을 서울로 압송하여 조사할 테니 그동안 임무에 충실하고 있으라 한다면 잠자코 기다리며 억울함이 풀리기를 기다릴 장수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괄이 죽어야 할 이치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분명 처음에는 좋은 뜻을 품고 힘든 일을 맡아 묵묵히 나아가던 사람이었을 텐데 자기가 손쓸 수 없는 곳에서 외풍이 불어와 궁지에 몰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성공했다면 역적으로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렇게 죽어야 할 이치는 실패했기 때문 말고는 없다.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일도 비슷한 형세로 보인다. 사회와 학계의 많은 원로와 학자가 (용감하게도) 소신껏 지적하듯, 의회를 장악한 야당의 폭주는 행정부의 기능을 거의 마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의회가 정책법안을 쏟아냄으로써 입법부가 사실상 행정부의 역할을 차지하려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과거에도 현재의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더러 있었던 여소야대의 정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수준인데, 당시에는 거대야당도 '정국주도는 정부여당이, 비판과 견제는 야당이'라는 암묵의 선과 관행을 지켰기 때문이다. 삐그덕거리는 조문해석만 남아 기능하는 87년 헌법이 수명을 다했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6공화국의 헌정을 지탱해 오던 '헌정관행'은 이미 사라졌다. (정치학회보에 실린 내 석사논문은 조문 너머의 관행으로서의 헌법/헌정(constitution)의 중요성을 다룬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겨울밤 비상계엄령을 내려 국회와 주요 기관을 장악하려 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계엄을 해제했다. 그 뒤에 구속되어 수사를 받다가 현재는 관저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인용할지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바로 내일이 그 결단의 날이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어야 할 이치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지난 2-3년 간 국정 운영에서 답답하거나 억울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보다 진심으로 야당과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에게 다가갔으면 일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마치 이괄이 임지에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며 서울로 압송된 아들이 고문 끝에 무죄임이 밝혀지기를 기다렸으면 됐을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괄은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반란의 주인공이 되었고 아마 윤석열 대통령도 내일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테다. 대통령이 그러한 결말을 맞아야 할 이치가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다. 막다른 곳에서 던진 승부수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탄핵안이 기각된다면 내란수괴로 불리지는 않겠다. 던진 승부수가 실패한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패를 가르기로 결단을 내렸고 패배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Sovereign is he who decides on the exception"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라는 아주 멋있는 말로 《정치신학》이라는 책의 첫 문장을 장식한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이란 적과 친구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한다. 적과는 승리와 패배만이 있을 뿐이다. 화해나 타협은 친구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There is written on the turrets of the city of Luca in great characters at this day, the word LIBERTAS; yet no man can thence infer that a particular man has more liberty or immunity from the service of the Commonwealth there than in Constantinople." 지금 루카의 포탑에는 큰 글씨로 '자유'라고 적혀있지만, 그렇다고 루카에 사는 사람이 콘스탄티노플에 사는 사람보다 더 자유롭거나 의무를 면제받은 것은 아니다.

홉스나 슈미트를 공부하던 때보다도 요즘 그들의 말에 공감이 더 간다.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간판을 단다고 정의사회에 살게 되는 것이 아니듯, 어떤 간판을 뗀다고 사회가 곧바로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세련되고 맵시 있어 보이는 문구를 만들고 간판갈이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쓸모없고 한심하게 여겨져 하던 일을 관뒀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처럼 간판을 훼손했다며 열이 오르지 않는다. 계엄이건 내란이건 무어라 불리건 그 실체가 성공했다 하더라도 친구들이 비약하는 것처럼 군사독재시절의 억압이 올리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간판만 멋지게 달아놓고 실제론 전체주의적, 일원적 방식으로 온 국민을 몰아가는 것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계엄 이후 오래된 생각인데 내일이 선고라기에 더 미룰 수 없어 밤중에 급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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