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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당하다'라는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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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 보면 화를 낼 일이 있기 마련이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 제비뽑기처럼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특히 화를 자주 내는 사람도 있고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라면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화를 적게 내는 사람은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닐까? 신기한 건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몹시 논리적이라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그리고 남의 잘못과 현재의 문제상황을 인과관계로 연결 짓는다. 너가 이런 잘못을 했고, 그게 어떤 상황을 야기했고, 그래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아주 논리적으로 깔끔하다.

 

너 때문이야!

사회과학에서 인과관계는 아주 엄밀하게 평가받는다. 실험연구로 변수를 통제하지 않고서는 인과관계라 말하지 않는다. 잘 설계된 실험을 통해 모든 변수를 통제했을 때 유일한 차이인 독립변수를 통해 종속변수의 차이가 발생할 때, 인과관계라고 한다. 또 인과관계를 통계적으로 '입증'했다고 주장할 때에도 모델의 설명력이 몹시 낮다는 것도 주의깊게 다룬다. 전체 사례가 1000개라고 할 때, 자기의 모델로 설명이 되는 사례는 기껏해야 2-30개 정도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사고실험을 통해 상대방의 잘못과 현재 발생한 문제가 '인과적' 관계라고 믿으며, 나아가 자신의 모델의 설명력이 높다고 믿으리라. 논리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정당하다. 나의 잘못은 현재의 문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상대방이 무엇을 어떻게 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눈 먼 봉사라서 남의 잘못을 못 보는 것은 아니다. 잘 내지 않는 사람은 남의 잘못 만큼 자신의 잘못도 발견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남의 잘못도 눈에 들어오지만 나의 잘못도 없다고 하긴 어려우므로 (이러한 태도가 양심적인 태도이긴 하다) 문제로부터 기인한 나의 불쾌한 감정을 남에게만 쏟아내지 않을 뿐이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불행히도 단명하였다. 공자가 회고하기에 안회는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았고(不遷怒)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다(不貳過). 우리 속담으로 하자면 종로에서 뺨 맞고 남대문에서 성질부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살다 보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란 노력만으로 해내기 꽤나 어렵다. 어디까지를 실수라고 볼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실수도 잘못도 많이 하면서 산다. 그리고 대부분 다양한 잘못을 골고루 하기보다는 비슷한 잘못을 반복한다. 공자는 이를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부류에 따르는 잘못을 한다(人之過也 各於其黨)'고 정리한다. 우리의 삶이 같은 실수의 반복이라고 한다면 불이과는 엄청난 칭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불천노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것은 나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가능하다. 내가 화가 났다고 남에게 성질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더욱 말종의 인간으로 떨어지게 하는 점이 여기다. 이들은 양심적인 성찰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이들의 사고구조에는 양심이 들어갈 곳이 없고 성찰을 돌릴 회로가 빠져있다. 

 

앞서 말했듯 모든 문제는 논리적으로 볼 때 남의 탓이다. 그래서 화가 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생각이 습관이 되면 먼저 화가 나고 그런 다음에 남의 잘못을 찾게 된다. 아무렴 남의 잘못이 티끌만큼도 없으랴? 이들은 먼저 화를 내고 자신의 화가 정당하다는 집착으로 인해 남의 잘못을 나중에 찾는다. 근거를 살피고 결론을 짓는 것이 아니라 결론이 이미 있고 알맞은 근거를 나중에 찾는다. 이를 어떻게 아냐고?

 

군복무의 전반부를 담당하는 것은 화장실이나 옥상, 건조장, 흡연장이다. 지랄맞은 선임은 우선 후임을 턴다. 시작은 후임의 명백한 잘못부터다. 흠과 틈이 없는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그날 한두 가지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시동이 걸린 지랄맞은 선임은 화가 나버렸다. 이미 화가 난 다음에는 자기가 후임을 옥상으로 부른 이유 외에 다른 트집까지 잡기 시작한다. 대뜸 너 관물대 정리 제대로 했는지 보자거나 전투화를 닦았는지 창틀에 먼지가 없게 청소를 했는지 등을 묻는다. 화가 먼저고 그걸 정당화할 이유가 나중에 오는 것이다. 그래도 없으면 지난번에 옥상으로 달구경 별구경 온 이유를 다시 들이댄다. 옥상 피크닉의 마무리 멘트는 '내가 틀린 말 했어?'다.

 

다시 공자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부류에 따르는 잘못을 한다고 말한 것에 돌아가보자. 나는 정당하고, 논리적이고, 옳다. 교수들의 특징이다. 너의 주장은 부당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그르다. 다른 직군보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을 더욱 성찰하지 않으면 교수들은 이런 말종의 인간이 되기 십상인 것 같다. 물론 반박시 (교수)님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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