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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상식적으로' 그 업계의 상식 - 병가(病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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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중요한 게 뭘까? 이건 참 대답하기 어렵다. 뭐 하나로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고 상황마다 뭐가 더 중요한지 바뀌기도 한다. 그냥 행복이라고 하면 속편하지만, 뭐가 행복인지 어떻게 행복해지는지를 따져보면 다시 도돌이표 안에서 맴돈다. 돈일 수도. 건강일 수도. 가족일 수도. 사랑일 수도. 사업의 성공이나 명예, 지위 등 뭐 여러 가지 중요한 게 많다. 이 중에 아무것도 항상 최우선일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완전히 내팽게 쳐버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 모든 걸 양손에 움켜쥐고 있기도 어렵다. 땅에 내려놓을 수도 없고. 방법은 하나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니 점점 신명이 나게 놀 수밖에.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고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며 분이 얼룩진 얼굴로 명예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건강을 위로 던지고 사랑을 받아서 가족이 손에 떨어지길 기다린다. 균형과 박자를 맞추기 참 어려운 저글링 묘기라고나 할까. 중요한 게 늘어갈수록 저글링은 어려워진다.

 

삶이라는 놀이가 더 진국인 게, 허공을 돌고 있는 공들에 중력이 다르게 작용한다. 건강은 살짝만 위로 던져도 천천히 떨어진다. 그렇게 던져놓으면 공부를 하느라 밤샘을 며칠 하고 신나서 술을 푸어 먹어도 한참이나 허공에 떠있는다. 근데 풍선 같아서 천천히 떨어지지만 갑자기 터질지도 모르는 그런 공이 건강이다. 돈은 잘 모르겠다. 많아본 적도 그렇게 부족한 적도 없었다. 조금 여유가 있으면 술잔 한 번 더 채워보고 적을 땐 밥 대신 라면 한 번 끓여보고. 내 손에서 돈이란 공은 그렇게 위로 뜨지도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은 스니치 같은 공을 가지고 돈을 놀린다. 비트코인이다 무슨 광풍이다 하면서 돈이란 공이 위아래를 재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지만. 명예는 헬륨 풍선 같다. 위로 오를 때에는 천천히 오르다가 떨어질 때에는 누가 손바닥으로 휘갈긴 찰진 엉덩이마냥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고고한 선비 행세를 하며 평생 쌓은 명예를 바로 그런 짓 하다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트린 사람이 근래에 많았다.

 

나는 아랫배가 자주 아프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집으로 간 날보다 내과에 들러서 약을 받아간 날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프고 매운걸 먹으면 배가 아프고 이유도 하도 많아서 왜 배가 아픈지보다 오늘은 왜 배가 안 아프지 이유를 찾는 게 나을 정도다. 중요한 일이 있거나 시험을 칠 때에는 중간에 화장실을 못 가니까 전날은 아예 점심부터 굶기도 했다. 그러면 신호가 와도 나올 게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누가 그러지 말고 내시경을 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위하고 장에 용종이 대여섯 개씩 있었다. 의사가 젊은 사람이 왜 이러냐고 내시경을 자주 해보라고 했다. 다행히 악성은 없었다.

 

그 뒤로 내시경을 준비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최근에 다시 했는데 이번에는 장에서 3개가 나왔다. 일정이 있어서 내시경과 동시에 제거는 못했는데, 닥터가 하나는 조금 크니까 삼개월 내에는 떼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다른 닥터는 상식적으로 젊은 사람한텐 문제가 아마 없지 않겠냐 여러 개면 오히려 악성이 없다고 했다. 병가를 내려면 암 3기는 되어야 내는 거라고도 했다. 나한테는 지금 상식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며 말이다. 동시에 솔직히 내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은 자기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도 했다. 어쨌든 그런 leave는 medical leave가 아니라 funeral leave 아닐까? 다른 닥터는 내가 우둔해서 그렇다며 대신 사죄한단다.

 

이 이야기를 수리영님의 남편 홍콩사람 근육짱짱 훈남 오웬형님에게 얘기했더니 you needa consult a useful doctor, not a doctor in democracy or something useless shit 이라고 하더라.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1021385

 

 

침울하던 저녁에 나의 사랑하는 그녀, 최근 나와 비슷한 일로 어딘가에 정이 뚝 떨어져버린 친구, 요새 하루 걸러 술잔을 같이 기울이는 친구, 남아 계신 한 분의 부고마저 전한 친구, 쉬라는 친구.. 뭐 여럿과 이야기를 하다가 급히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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