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글
-
읽고 보고 리뷰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 로자리아 버터필드 저, 오세원 역, 2018, [확대개정판] 『뜻밖의 회심』(아바서원)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도서관 서가를 지나가다 우연히 눈길을 끄는 책이라면 일단 빌리고 보는 나다. 근데 나는 보통이라면 익숙한 길로만 다닌다. 그래서 보통의 나라면 이 책은 아마 볼 일이 없었을 책이다. 내가 신앙에서 존중하는 어떤 자매님이 추천하지 않았으면 말이다.도서관에 있나 봤는데 없어서 도서신청을 하고 받기까지 한 달여 시간을 기다려 책을 받게 되었다. 책을 건네받고 첫인상은 솔직히 '그럼 그렇지' 정도였다. 부제로 달린 '좌파 레즈비언 영문학 교수의 진솔한 고백'이란 문구 중에, 도무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낱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간증'류 서적임을 고려할 때, '좌파,' '레즈비언,' '(종신)교수'라는 문구는 학계에 적당히 발 담가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상업적인..
-
이렇게 지어 보았다 如是我習作
샘 깊어 그침이 없네 源遠不竭
源遠不竭 샘 깊어 그침이 없네有素而繪倩盼兮 흰 바탕에 보조개와 눈동자를 그렸네 掌竹節笑瓦當仁 대나무 마디진 손바닥 막새의 어진 웃음 靑丘槿花鄕月城 푸른 언덕 무궁화 꽃핀 고을 경주에서 源遠之水汎緣珉 샘 깊은 물 넘실넘실 옥돌에 닿았구나 甲辰孟夏 祝汎熙結婚之慶 堂兄碩熙撰 叔父錦農書올해는 시흥이 자주 올라 방자하게 여러 수를 짓고 있다. 지금껏 네 수를 지었는데 모두 아침에 씻는 찰나에 얼개를 갖추어 순식간에 지었다. 이번에는 사촌동생(汎)의 결혼식을 열흘 가량 앞두고 아침에 씻는데 갑자기 흥이 올랐다. 짝이 되는 신랑(珉)은 대한민국 공군장교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다. 올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둘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기에 조문을 와서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듬직하고 다부진 체격이지만 얼굴은 웃는..
인상이 아니라 생각
-
읽고 보고 리뷰
이보게 관상가양반, 서두에 중요한 게 빠진 듯 허이 - 박상훈 저, 2023,『혐오하는 민주주의』(후마니타스)
"이보게 관상가양반, 서두에 중요한 게 빠진 듯 허이." 박상훈, 2023,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 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후마니타스. 324쪽, 18,000원.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 정치’라는 창문으로 바라본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입체적 모습이다. 팬덤 정치란 무엇인가, 행위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등장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 www.aladin.co.kr 무엇보다도, 나는 저자랑 생각이 많이 다르다. 이는 저자 박상훈이 2009년에 한국의 지역주의를 주제로 쓴 『만들어진 현실』을 읽고서나, 한 두 차례 저자의 특강이나 강연을 듣고도 든 생각이니 상당히 오래된 생각이다. 이번 책을 읽고서도 박상훈과 나는 같은 대상을 두고 그것이 문제라고 보면서도, 서있는 ..
-
이렇게 생각한다 私見
홍범도 논란을 지켜보며
결론부터 말하면 내 의견에는 홍범도가 육군사관학교에서 특별히 기려야 할 위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흉상을 모셨으면 옮기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내가 고려한 점은 다음과 같다. 육사에서 기려야 할 위인의 덕목 과거 인물을 평가할 때 적절한 기준 퇴거해야 할 만한 사유 먼저 육군사관학교는 어떤 덕목이나 자질을 갖춘 위인을 기려야 할까? 육사는 고급지휘관이 될 군인을 양성하는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군인과 지휘관의 덕목을 갖춘 이를 기리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지휘관의 첫 번째 덕목은 전략수립과 실행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전투에서도 승리하고 전쟁도 승리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혹은 전투에 패하더라도 전쟁은 승리로 이끌 줄 알아야 한다. 난 이 점에서 홍범도가 특별히 출중한 지휘관임을..
-
이렇게 생각한다 私見
자폐로 가는 철학
사주명리학, 관상학, 풍수지리학이나 음양오행도 철학이라고 부르거나, 누군가의 관점, 사상, 비전, 입장 등도 그냥 큰 의미로서 예컨대 이승만의 철학, 김대중의 철학, 노무현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희, 칸트, 헤겔이 한 것을 철학이라고 하고 그런 지적 활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철학자라고 할 때, 철학자는 자폐가 되기 십상이다. 의학에서 말하는 병으로서 자폐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경험적으로 획득해야 할 지식과 연역적으로 획득해야 할 지식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연역적으로만 획득하려고 하는 습관이, (외부에 대해) 스스로(自) 닫혀있다(閉)는 점에서 자폐라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지식은 예컨대 이렇다. "나는 세심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지식은..
-
이렇게 생각한다 私見
성경묵상 -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나의, 나만의, 정당한' 몫은 무엇인가? 01
마태오의 복음서 20장 1절-16절에는 착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가 나온다(마태오 20,1-16). 복음서의 말씀 중에서 이 말씀은 일상 속의 여러 상황에서 특히 자주 떠오른다. 공관복음에 실린 말씀이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 비유는 다음과 같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
-
이렇게 생각한다 私見
'다 널 위해서 그래'라는 가스라이팅 - 오늘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
설날이다. 인터넷상에서는 오늘이 차이니즈 뉴 이어 Chinese New Year 인지 루나 뉴 이어 Lunar New Year 인지 코리안 뉴 이어 Korean New Year 인지 그냥 설날 Seollal 인지 춘절 스프링 페스티벌인지 두고 열등감 말고 남은 게 없는 빈곤한 쥐떼들이 한창 사단을 일으키고 있다. 반대로 현실의 거리는 썰렁하다. 거리의 상점과 식당이 온통 문을 닫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만 문을 열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니 머리통이 한 줌 주먹만 한 애기들이 앉아 문제지를 풀고 있다. 설날 당일 오후 한 시 서울 모처 아파트단지 스타벅스의 모습이다. 저 아이들은 지금 행복할까? 다 널 위해서 그런거야 라는 말에 결박당해 설빔 입고 떡국 먹고 윷을 놀다가 세뱃돈 받는 신나는 날의 행복의 희생하..
-
이렇게 생각한다 私見
학계와 사회에 기여한다, 공헌한다는 것의 의미 (인문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세미나를 듣거나 논문, 연구서를 읽으면 과장 조금 보태서 밥 먹었니? 만큼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바로 기여한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말에서 뿐이 아니다. 영어 서적에서도 this research contributes to, this study will contribute to 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한다. 세미나에서도 마찬가지다. 앉아서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무언가에 대단한 기여와 공헌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 양 착각이 든다. 그런데 어디에, 누구에, 무슨, 어떤 기여를 어떻게 하고 있다는 말일까? 이렇게 "임금님 벌거벗은 거 아냐?"라는 되바라진 의문을 가진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닌가 보다. 구글에 this research contributes to 혹은 researc..
-
이렇게 생각한다 私見
'나는 정당하다'라는 집착
사람이 살다 보면 화를 낼 일이 있기 마련이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 제비뽑기처럼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특히 화를 자주 내는 사람도 있고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라면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화를 적게 내는 사람은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닐까? 신기한 건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몹시 논리적이라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그리고 남의 잘못과 현재의 문제상황을 인과관계로 연결 짓는다. 너가 이런 잘못을 했고, 그게 어떤 상황을 야기했고, 그래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아주 논리적으로 깔끔하다. 사회과학에서 인과관계는 아주 엄밀하게 평가받는다. 실험연구로 변수를 통제하지 않고서는 인과관계라 말하지 않는다..
-
이렇게 생각한다 私見
인문학 연구자가 '자기에게 진실하다'라는 것 01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혹은 빈곤이라느니 쇠퇴라느니 하는 말은 국물로 따지면 이제 우리고 우려서 사골이 형체도 남지 않았을 그런 상투적인 말이다. 그만큼 내로라하는 석학, 대중강연자 펜대나 마이크 좀 쥐어봤다는 사람들치고 여기에 대해 한마디 근엄한 통찰을 던져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겠다. 조금 헝클어진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서 '물 위를 걷기 위해선 빠지기 전에 재빠르게 다음 발을 내딛으면 된다'같은 리빙포인트 해법을 대단한 통찰이랍시고 던지면 그동안 흘린 먹물의 양에 비례하는 강연료가 통장에 꽂힌다. 명강연이라며 쏟아지는 박수갈채는 덤으로 말이다. 인문학이 위기에 빠져버려 훌륭한 학자들이 팔 걷고 나서 목에 핏대를 세운 지 오랜데 인문학이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병든 인문학에 달라붙..